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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동트는 아시아// 쇼비니즘의 광풍을 뚫고
펜사콜라 2006-04-04 16:18:43   1,401
쇼비니즘의 광풍을 뚫고

조선과 대만은 100년 전 근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기간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두 나라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대만은 정부와 민간 모두 일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지속적인 반일교육의 영향으로 정부나 민간할 것없이 일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양국이 비슷한 기간동안 비슷한 성격의 일본통치를 거쳤음에도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첫째 대만에 대한 일본통치가 15년 더 길었다는 것, 둘째 대만에는 일본 이전에 독자적인 왕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남북한이 일본에 대해 보이고 있는 유별난 적대적인 태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북한의 경우 오랫동안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세력이 집권했기 때문에 반일정책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독립 이후 친일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남한에서는 왜 이토록 반일감정이 심각한 것인가. 보통의 한국인들이 지닌 반일감정의 기저에는 과거 일제통치 기간동안 조선이 많은 손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는 듯한데, 같은 기간동안 일본인들은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일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국인 사이에 퍼져있는 반일감정의 근원에는 먼저 역사학자들에 의한 자의적인 자료조작과 사실왜곡이 자리하고 있고, 이에 근거한 강력한 반일교육과 이데올로기 책동이 깔려있다.

1905년 이후 일본에게 있어 조선은 식민지라기보다는 확장된 일본의 영토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과 대만을 통치함에 있어 대체로 본토인과 같은 대우를 했으며,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즉 대륙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개발과 투자에 있어서는 본토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유럽 열강들에게 식민지라는 것이 멀리 떨어진 곳에 농장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면 일본에 있어 조선과 대만 경영은 상점 주인이 옆의 점포를 사들여 가게를 확장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이 점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서울에 거주하면서 멀리 떨어진 호주에 과일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그는 호주의 농장에 일정한 돈을 투자해 수익을 발생시킴으로써 그 이윤을 따먹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상점을 경영하는 가난한 상인이 힘들게 옆에 있는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다면, 그는 열성을 다해 새로 생긴 가게를 단장하고 기존 점포와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얻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100년 전 강대국들과 힘들게 전쟁을 치르면서 대만과 조선을 합병한 일본의 처지는 바로 이런 구멍가게 주인과 비슷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조선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일을 두고 돼지를 키워 잡아먹기 위한 것이었다거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면서 그 의미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개발하는 데 있어 혹 장기적인 수탈이나 병참기지 확보의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에 와서 힘들게 농토를 개량하고 다리와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건설한 일본인들은 조선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런 애정과 개척정신이 없다면 말과 풍습이 다른 낙후된 오지에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은 조선에 문명을 전파하고 산업을 일으키고 무지한 사람들을 교육시켰다. 따라서 과거 일본이 조선에 행한 선의의 시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즉 한국인들에게 존재하는 반일감정은 한국 정부의 의도적인 역사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인 것이다. 이는 또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흔히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일본과 합병하는 것만이 조선의 문명개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조선의 뜻있는 개혁세력 사이에 합의가 도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주도하는 강력한 여론에 따라 일본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접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가장 유력한 증거가 바로 1904년 결성된 일진회다. 이 단체는 동학과 독립협회 등 당시 조선의 모든 혁명세력이 연합하여 조선 왕조를 타도하고 문명개화라는 조선혁명의 과제를 이루기 위해 결성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인 대중 정치조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은폐되어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일진회에 대해 일본이 소수 친일파들을 규합하여 결성한 어용 사이비 단체 정도로 왜곡하여 교육하고 있다.

1904년 초 벌어졌던 러일전쟁에서 동학교도들은 교주 손병희의 지시에 따라 무려 17만여 명이 참전하여 일본과 함께 싸웠다. 이후 동학교도와 보부상들은 진보회를 결성하여 첫해에만 전국에서 38만의 조직원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이름을 일진회(一進會)로 바꾸고 독립협회 계열의 지식인들과 연합하여 한일합병과 개화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 때 100만이 넘는 방대한 조직을 갖춘 이들은 스스로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라 외모에서 쉽게 구분이 되었기 때문에 보수 반동세력의 집중 공격대상이 되었다. 일진회는 결성 이후 일본과의 합병을 추진하였고 그로인해 반혁명 세력과의 내전에서 수많은 회원들이 살해되고 건물이 파괴되는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이 일진회를 친일단체라 하여 비난하고 반동 폭도들을 의병이라 칭송하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해석하는 실수라 하겠다.

스스로 을사년 신협약의 체결을 주도하고 조선의 초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일본에 부담이 되는 조선 합병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며 이는 다만 일진회 등 조선의 혁명세력과 일본내 병합파들이 청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안중근에 의한 이토 암살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여론은 급속히 합병으로 기울게 되었으니 안중근은 그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애국을 한 셈이 되었다. 일진회는 조선 역사상 최대의 혁명 조직이자 군사조직이었으며 조선총독부 조차도 그 힘을 두려워하여 합병 이후 강제해산하였을 정도로 강력한 조직이었다.

일본의 통치로 인해 조선은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30년 남짓한 기간동안 천만명도 안되던 인구는 2500만으로 늘었고 평균수명은 24에서 45세로 늘었으며, 미개한 농업사회이던 조선은 단시일 내에 산업혁명을 이루어 질서정연한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였다. 본토에서는 우수한 교사들이 부임해 조선인들을 교육하였고 일본 정부와 황실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되어 각종 사회기반 시설이 건설되었다. 1920년대에는 일본에 대한 쌀 수출로 조선에는 갑부들이 속출하였으며 그 바탕 위에 소위 '민족자본'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1920년대 조선의 문예부흥은 일본과 정확히 같은 시기에 시작된 것이며 오늘날 이광수와 최남선으로부터 시작해 김동인, 이효석, 김영랑, 윤동주, 홍난파 등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들이다. 조선왕조가 존속됐다면 이같은 천지개벽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이같은 공헌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않고 있으며, 간혹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그것이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타율의 성과물이라는 이유로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조선은 인류 역사상 유일했던 유교 원리주의 사회로서, 그 유교적 계율의 정교함과 엄격함은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 따위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라 하겠다. 따라서 오늘날 회교 근본주의가 이슬람 사회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인식이 미치는 사람이라면 조선의 유교 근본주의가 외세의 영향이 배제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소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 외세에 의한 개혁, 그것도 일제에 의한 철저한 청산작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지역으로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일제시대가 우리에게 행운이었고 축복이었을지언정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불행한 과거일 수는 없다.

나는 자라면서 전후 한반도가 두개의 나라로 분단되었지만 일본은 운 좋게도 분단을 피했다고 생각해왔다. 통일을 말할 때에도 남북한의 통일만을 얘기할 뿐 일본이나 대만과의 통일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패전 후 일본제국이 7개 지역으로 분할 점령된 것이지 남북한이 분단된 것은 아니다. 승전국들에게 한반도는 일본의 영토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며, 이들은 구일본에서 남한과 북한,대만,사할린,오키나와,남양군도를 모두 떼어낸 뒤 각각 분할 점령한 것이다. 이 가운데 사할린만이 아직도 러시아의 영토로 되어있고 오키나와는 1972년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여러 개의 독립국이 되었다. 일본제국이 메이지유신 이후 획득한 영토를 분리한다는 것은 승전국들의 억지논리였을 뿐 우리가 선택했던 것은 아니며, 물론 일본이 원했던 것도 아니므로 이는 분명 강제 분단이라 하겠다.

일본은 조선과의 분단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일본은 전후 독립과정에서 사할린과 대만은 포기하더라도 최소한 한반도와는 통일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백방 노력하였지만 힘없는 패전국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고 분단은 고정되어 버렸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남북한을 분할 점령한 뒤 자신들의 꼭두각시를 대리 통치인으로 앉혀 이념대결의 시험장으로 육성했다. 그러므로 조선분단의 원흉, 더 근원적으로 구일본 분단의 원흉은 멀쩡한 나라를 패전국이라 하여 강제로 갈라놓은 미국,소련인 것이지 분단을 막아보려 애쓴 일본은 아니라 하겠다.

나는 어린 시절 <도라 도라 도라>라는 전쟁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그 영화에서 일본은 하와이의 평화스런 미국인들을 기습 공격한 비겁하고 못된 나라였고, 나는 일본인을 저주하면서 제2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미국이 멋지게 일본군을 때려잡을 것이라던 도라도라 2탄은 몇 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진주만>이라는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일본군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60년 전에 엄청난 규모의 항모전단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출정해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박살내버린 그 위대함에 나는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우리도 일본이었으며 우리 선조들은 전쟁의 승리에 내지의 일본인보다 더 열광했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국인들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에서 미국을 응원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현실은 과거 한 나라였던 한국과 일본이 오늘날까지 미군에 점령당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서, 분명 바람직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이다.

오늘날 한국정부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체계적인 반일교육과 그 결과로 생겨난 반일감정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분단 이후 남한을 장악한 정치집단은 체제유지를 위해 공산주의 일본이라는 두 개의 증오집단을 조작해 내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어느정도 수그러진 오늘날에도 반일 세뇌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반일 책동은 한국이라는 국가에게 백해무익한 자해행위에 불과하며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쓸어내야 할 구시대의 유산이라 하겠다.

아마도 한국은 전세계를 통틀어 반일감정이 존재하는 유일한 국가일 것이다. 정작 일본과 전쟁을 치른 미국인들은 오늘날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우호적인 국가이자 중요한 경제파트너로 여기고 있으며, 경제적 문화적으로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일본에 매우 호의적이다. 또한 과거 51년 간 일제시대를 경험한 대만에서도 반일감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한국과 한 목소리를 내는 중국의 경우 공식적인 태도는 공산당의 입장일 뿐이며 중국인들에게서 한국에서와 같은 반일감정을 발견하기는 매우 힘들다. 사실 많은 중국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며, 한국이나 일본을 중국의 일개 성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2년 새해를 맞아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합동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한국인 가운데에는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인들은 한국에 호감을 갖고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이는 한국인들이 적극적인 대일 혐오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들의 혐한감정은 한국의 이유없는 증오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무례하다는 것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도 한국의 유별난 반일감정은 국제사회에서 두고두고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지만 막상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이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전면적인 반성에 착수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나는 개항 이후 일제시대에 이르는 약70년간을 조선의 시민혁명기로 설정하고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개항 이후 미개한 조선을 현대적인 시민사회로 개조하는 데 있어 일본은 대체적으로 혁명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으며 때로는 주도적으로 개입해 조선의 개혁을 추진한 우호적인 외세였다.

조선의 부르조아 혁명은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한 축으로 하고 개화당과 독립협회를 창설했던 지식인 그룹, 동학으로 대표되는 민중세력 등 3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3대 세력은 시대에 따라 대결하거나 연합하면서 조선혁명을 이끌었으며, 한일합병은 그 혁명의 바람직한 귀결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시각으로 개항기의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혁명은 비록 다소 왜곡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나 결코 무력하게 외세에 의해 휘둘린 피침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인들도 큰 역할을 담당한 주체적인 변혁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 조선의 혁명가들은 조선왕실과 그에 빌붙어 수구외세, 매국노들에 대항하면서 30년 동안 끈질기게 개혁을 추진했으며, 조선의 문명개화는 이들의 피땀으로 얻어진 성과물인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소동이 한참이던 2001년 여름 한국방송공사에서는 일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 방영한 바 있는데, 나는 거기에서 오늘날 일본에 자학사관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여러가지 자랑스런 업적을 이룩하였으며 인류발전에도 공헌한 바가 많은 나라이다. 이처럼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일본이 한 차례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 때문에 선조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오늘의 현실은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몇년 전 나는 서울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이상하게도 한국인을 만나면 으레 몽둥이로 매를 맞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한국인들이 때리지 않자 언제 때리는 것인지 묻기도 했다. 비록 패전국이지만 오늘날에도 세계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국민이 왜 이웃나라에 와서, 그것도 얼마 전까지 일본 땅이었던 곳에 와서 이처럼 궁색한 처지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역사교과서들로부터 일본이 저지른 죄악상에 대해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패전기념일마다 묵념을 하며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문제는 반성과 사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청산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 있다. 일본은 전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고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그 정신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얼마 전 만난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강대국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라고 말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일본은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에 비하면 땅덩이도 좁고 인구도 적어 여러모로 너무 작은 나라인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겸손이라기보다는 자학에 가까운 이런 사고방식들은 모두 미국에 의해 강요된 식민사관과 자기비하 작업의 결과 생겨난 것이며, 일본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군사적으로 당당한 자주독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한 선결과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 바로잡기 운동은 잘못된 것을 제 자리에 돌려놓자는 움직임일 뿐 한국에서 말하는 우익의 준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우익도 아니며 그저 일본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일 뿐이다. 최근의 교과서 파동에서 한국정부는 일본의 역사 바로잡기 운동을 트집잡아 분별없는 처신을 함으로써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않다. 이는 정부 당국자들과 한국민 사이에 팽배해 있는 저열한 역사인식과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연유한 것이며, 한국은 일본이 이 같은 무례한 언동에 정면대응하지 않는다 해서 이를 자기합리화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의 유연한 대응은 정면에서 상대를 적대하지 못하는 일본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한 자신보다 처지가 좋지 않은 이웃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의 의사표현 방식이 차라리 서양식이었다면 최소한 지금쯤 한일관계의 갈등은 그 실체라도 드러나 있을 것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군대가 독일을 침공했을 때,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통해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독일 민족의 단결투쟁을 호소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프로이센의 낡은 관료체계를 철저히 청산하고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것을 보면서, 나폴레옹이야말로 살아있는 세계정신이며 독일인은 프랑스 혁명군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피히테는 알맹이 없는 민족주의를 중요시 했지만 헤겔은 그 침략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주목했다.

100년 전 조선의 상황에서 보면 피히테의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안중근이나 김구 같은 인물들이고 헤겔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완용이나, 김옥균, 박영효, 최남선, 이광수 등 소위 친일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어느 쪽이 옳은 입장인가는 자명하다. 허황된 민족주의를 외치는 자들은 대체로 수구세력의 앞잡이들이었으며, 진정한 애국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혁명을 지지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혁명의 진정한 수호자로 추앙해 마지않았으며 국민투표를 통해 절대다수가 나폴레옹의 황제즉위에 찬성했다. 나폴레옹 역시 이 같은 프랑스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복전쟁을 통해 전세계에 프랑스 혁명을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정복전쟁이 무엇이나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의 정복전쟁은 헤겔의 표현대로 살아있는 세계정신의 활동인 것이며, 이들의 정복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전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 것은 침략이며 악이라는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과연 그 정복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도 발명된 지 200년 밖에 안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현대사회에서는 점차 폐기되어 가고 있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민족단위의 자주적인 존립이 정당하다는 논리도 최근들어 유행하게 된 민족국가의 자기합리화 논리일 뿐 그것이 역사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19세기말 유럽인들의 식민지 정복에서는 정당성을 찾아보기 힘들겠으나 일본의 아시아 진출에는 분명 세계정신의 자기 구현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겠다. 혁명을 통해 비유럽 지역 최초로 근대적인 사회제도를 구축하고 자율적으로 시민혁명을 완성한 일본의 변화는 세계 역사에서 가히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후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달리 착취와 수탈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혁명과 근대정신을 전파하겠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었으며, 이 같은 점에서 충분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은 조선과 대만에서 압제와 가난을 추방하고 근대적인 법의 통치를 구현하였으며 그 결과 일본 통치 지역의 주민들은 문명개화되어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싱가포르와 일본 사이에 자유무역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일본총리는 <확대 동아시아 공영권>을 주창했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두 가지 모두 그 의미가 적지않은 사건이며, 바야흐로 동아시아에 협력과 공존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뉴스라 할 것이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멋진 영상으로 치장한 명성황후 뮤직비디오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극우 쇼비니즘의 미친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 같은 파렴치한 역사왜곡과 반일 책동은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를 동아시아의 외톨이 국가로 만들어갈 수 있으며, 언젠가는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그러한 깨달음의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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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종교와 성으로 배타적 민족주의 분노 부른다 2023/04/28
페미니즘과 반일(反日) 관계에 대한 요약 2022/12/08
[페미종언] 페미들의 전성시대 그리고 그 후 2022/06/21
국수주의 광풍 앞에서 바이든이 온다고 해결되나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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